“이것이 성령님이다” ---1부
교회가 타락해가는 시대를 하나님나라의 애통하는 심정으로 바라보며 선지자의 음성을 발한 토저는 우리를 영적으로 크게 놀라게 한다. 우리의 게으르고 나른한 심령을 예리하게 할퀴고 지나간다. 토저의 메시지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좌우에 날선 검(劍)으로 우리의 무딘 마음을 일도양단(一刀兩斷)한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도덕 수준을 높이며, 우리의 지성을 날카롭게 하며, 성화(聖化)된 감정을 고양시킨다고 토저는 강조한다.
1부에서는 성령님의 강림을 열망하라고 하신다. 많은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현재 기독교는 세상과 너무나 뒤엉켜버려 져있다. 이렇게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성경의 교훈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고 성경의 분명한 교훈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일에 실패한 것이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진정한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필요한 것으로 된다. 우리의 문제는 “이해”의 문제가 아니고 “믿음과 순종”의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과 구별되라고 하신다. 그럼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무엇인가?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들, 그것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것들, 그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들, 이것들은 그 외형이 도덕적으로 저질이든 고상하든 간에 모두 세상이다. 때문에 우리들은 이런 세상의 영과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에녹이 그의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했듯이 우리가 우리의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세상을 거부해야 한다. 세상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한쪽 다리는 이 세상에, 그리고 다른 쪽 다리는 저 세상에 걸쳐두고 소위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님과 동행하는 법을 훈련하여야 하고 세상과 동행하지 말아야 한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로 성령님은 사랑 게신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둘째는 예수님께 점점 몰두해야 하며 셋째는 의 가운데 행하고 넷째는 생각을 ‘깨끗한 성소’로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는 성경이 성령님을 무엇이라고 가르치는지 연구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성령님과 가까워질 수 있다.
진정한 하늘 복을 받고 싶으면 성령을 받아야 한다. 우선 성령 강림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여기에는 4가지 증거가 있다. 그것들로는 성경과 세례 요한의 증거 그리고 성부 하나님의 증거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들이다. 이러한 증거는 외적 증거이고 중요한 내적 생명의 직접적인 증거가 있다. 그 뜻인즉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직접 활동하시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셨고 또한 영적 권세를 주셨다.
기독교는 인간의 전적 무능력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잠재력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믿어야 한다. 성령님은 그분 자신이 인간의 영에 직접 작용하셔서 그분의 거룩한 목적을 이루신다. 때문에 우리들은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위로부터 능력이 인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문제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성령님이 없는 기독교의 멍하고 실재하지 않는 것 같은 이 상대를 고칠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님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한 위엄과 가슴 떨리는 신비를 우리에게 드러낼 수 있는 것도 오직 성령님의 능력의 내적 작용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