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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길 :: 2008. 4. 26. 14:43

오직 읽고서

 

소책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오직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요한복음 14: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으니라" 라고 적혀져 있는데 말은 하나님께로 이르는 유일한 길에 대한 명백하고도 직접적인 주장이다.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 외의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중보 자도 분이신데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다.”

책에서는 보편구제설이 말도 되는 소리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다른 종교에 비해서 기독교는 단순한 윤리나 도덕, 아름다운 이상들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역사 가운데서 행하신 것의 기록이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 복된 소식을 선포한 것이다.

인간은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죄에 대한 징벌을 받게 밖에 없지만, 하나님 자신이 실제로 인간으로 오셔서 믿는 사람들을 대표하여 완벽한 삶을 사신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심으로 우리는 구원이라는 선물을 거저 받은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인성뿐만 아니라 신성을 가진 우리의 유일한 길이다.

수많은 종교들은 율법을 지키고, 가르침을 따르고, 의식을 행하며, 희생을 하는 자신들의 노력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우리가 힘써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비로운 사랑의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분에 넘치는 선물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독선과 자신감을 부숴버리고, 겸손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비롭고 은혜로운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한 다른 종교들과 달리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셨다.

그리스도인들은 누리고 있는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과 기쁨, 그리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알게 되기를 갈망하기에 복음을 많이 전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아들을 모신 사람은 생명을 가지 사람이요,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생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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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가? (큐티 이사야5:8-23) :: 2008. 4. 17. 21:29

讀經:

以賽亞書58-23

 

默想與應用:

如果神不允許,神不祝福的,積累再多的財富都是無用的。那些不關注神的國度,只享受在宴樂的生活也是無益的。神是公平、公義的,當他的審判來臨的時候,一切的不義的東西都會被毀盡。重新整理以色列所犯的罪乃是這樣:

 

1)  對土地和房屋的貪欲

2)  放蕩奢侈的酒宴

3)  傲慢

4)  歪曲的價值觀與道德觀

5)  賄賂和腐敗


在經文當中,比較引人注目是“禍哉”這個詞,在今天的經文中出現了5詞。這說明這些罪的嚴重性與審判的可怕性。所以,我默想當中主要查驗自己的生活當中是否存在上述的罪以及我是否關切這些罪。

 

1)  土地,房屋可以引申為所有的物質的東西。在平時的生活當中,物質往往對我有很多的吸引力。回想起來,有很多時候并不是按神的旨意所使用。

      -----》在神的事工當中,樂於奉獻。

2)  可以引申為沉迷某些東西,不懂節制或者只追求個人的享樂行為。此現象雖然在自己的生活當中不多。但是在某些時候卻沒有按著圣靈結出節制的果子。例如,有的時候上網容易沉迷,浪費了很多的時間。

-----》上網,看電視等與神與己并無多大幫助的事情上減少時間。

3)  傲慢。在很多時候不順從神的話語的時候可以歸結為一種傲慢的行為。例如,以忙和疲憊為藉口而不默想和禱告。

-----》堅持每天都默想神的話語,不為自己找藉口。

4)  雖然在神的話語之下已經建立了正確的價值觀和道德觀,然而有的時候往往認同社會普遍認同的價值觀,雖然這種價值觀并不是符合圣經原則的。

-----》在生活中保持清醒的判斷力,堅持原則,并努力也能改變別人。

5)  沒能仔細考慮。不過也不能斷定是完全沒有的。

 

 

禱告: 主啊,在你提醒我們要注意的罪中,在我的生活中都有不同程度的體現。主啊,我知道自己是不足和軟弱的人,求你用你話語幫助我。特別是讓我在生活當中更加關注這些問題,思考做事的時候都想一想如果是耶穌基督會怎么做,從而順服在神的話語下,過一個蒙神喜悅的生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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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이사야 3:1-15큐티) :: 2008. 4. 12. 22:42

주 만군의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언어와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눈을 거슬리게 했기 때문에 그들을 멸망시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만군의 하나님이시고 만물의 진정한 소유자이시고 약한 자를 착취하는 행위를 중한 죄로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서 주는 메시지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세상을 의지하고 우상을 섬기거나 말과 행동이 부정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에 따라 그 행위대로 갚아주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때 늘 깨여있어야 하고 매 순간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함으로서 의지의 대상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만 우리는 의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즘 저도 너무나 바쁜 일상에 쫓기다 보면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스스로 판단할 때가 많은 거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적어지므로 자신도 더 교만해진 거 같은데 이번 QT를 통해서 나 자신을 하나님께 내려놓을 수 좋은 계기가 되였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세상에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가 보고 계시기에 우리는 언어와 행동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다른 사람한테 큰 상처가 될 수 있고 성실하지 못한 행동은 죄를 짓게 됩니다. 나의 마음까지 꿰뚫어 보시는 주님 앞에서 겸손하게 행하길 원합니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주님만을 신뢰하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제가 될 수 있게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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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누구인가? :: 2008. 4. 5. 01:20

중국어 예배의 한승호 형제님한테서 받은 편지인데...
"바울은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 교회다니는 정선자 자매님이 발표를 했답니다.

바울/사울은 누구인가?


기독교 박해와 회심

기독교교회의 가장 초기의 문필가요, 신학자요, 이방인 선교사인 바울 그는 기독교역사에 있어서 처음으로 이방인 선교를 시작하여 교회를 설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기독교신학의 창설자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가 남긴 여러 서신들은 현존하는 가장 고대의 기독교 문서로서 기독교신학의 근간이 되고 있다.

우리가 왜 바울이 개종 전에 기독교 박해에 앞장을 섰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보유하고 있는 두 종류의 이름, 곧 전통적인 유대인으로서의 “사울”과 다소와 로마제국의 시민권자로서의 “바울”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그가 특별히 유대와 희랍 등 두 종류의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해왔다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 다소와 로마 시민권자로서 바울

우리는 비록 바울 자신이 그의 서신에서 직접 말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전해주고 있는 것처럼 로마제국 내의 길리기아 지역의 수도였던 희랍도시 다소에서 다소와 로마의 시민권자로 출생하였다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가서 동족 유대인들 때문에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던 로마 군대 천부장에게 체포되었을 때에 그는 천부장을 향해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다”(행 21:39)라고 말하였으며, 또 천부장의 병사들이 그를 채찍질하였을 때 곁에 섰던 백부장을 향해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행22:25)항의하며, 또 천부장에게 이르되“나는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이다”(행 22:28)라고 대답하였다.

사도행전에 나타나있는 이와 같은 누가의 증언으로부터 우리가 바울 자신의 가정환경과 가문의 상황을 어느 정도 추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당시 시민권만을 획득하는데 있어서도 최소한 500 드라크마(당시 5백 드라크마는 성인 노동자의 2년 수입에 해당하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이상의 돈이 있어야 했고, 그리고 당시 로마의 시민권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사회적 신분을 갖춘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라는 점을 상기할 때 당시 바울의 가정은 다소에서 상당한 재력과 명성을 가진 유대인 가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바울이 어릴 때 그 부모들이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그를 유대인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유학시켜 거기서 엄한 바리새파 랍비교육을 받도록 했다(행 22:3)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2. 히브리인과 바리새인으로서의 사울

바울은 빌립보서 3장 5절에 있는 그의 자서전적 고백에서 “내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11장 22절에서도 유대 적 배경을 자랑하는 자신의 반대자들을 염두에 두면서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라고 말하고 있으며, 로마서 11장 1절에서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점에서 사도행전 22장 3절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화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다”라는 누가의 보도와 바울 자신의 증언 사이에는 분명한 일치가 있다.

바울이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라는 사실은 비록 부모들이 희랍의 도시 다소에 살았지만 그 부모는 희랍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유대교와 전통을 철저히 고수하는 전통적이며 대단히 보수적인 유대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그가 베냐민 지파의 출신이라고 하는 것은 바울의 가정이 개종자의 후예가 아니라 유대의 초대 임금 사울의 가문이며, 유다지파를 끝까지 지원한 명문가문인 것을 강조해주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자서전적인 증언에서 “바리새인”으로 말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대로 “바리새파”는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사두개파”, “에센파”와 함께 가장 영향력을 가진 종교 집단이었다. 사두개파가 주로 당시 소수의 정치 및 종교 지배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바리새파는 유대 종교와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일종의 대중적인 종교-사회적 운동을 띠고 있어 일반 백성들로부터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바리새인이 되는데 있어서 가장 필수적인 길은 율법에 정통한 랍비의 문하생이되어 철저히 율법을 공부하는 것, 그것도 지상에서 가장 거룩하며 율법 공부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불리워지고 있던 예루살렘에서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가 전하고 있는 것처럼 바울은 청소년시절에 예루살렘에 와서 당대의 가장 유명한 바리새파 랍비로 알려져 있던 랍비 가말리엘 1세 문하생이 되어 정규적인 율법 공부를 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갈라디아서 1:14절에서 바울 자신이 친히 “내가 내 백성동년배 중에서 누구보다도 유대교에 앞선 진보를 보여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3. 크리스천 박해자로서의 사울과 회심

사도행전에 18:12절에 언급되고 있는 바울을 재판한 아가야 총독 갈리오가 델피 신전에 의존하여 그의 재임기간이 주후 51년에서 53년으로 볼 때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지역에 대략 주후 50/51년에 도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예루살렘 첫 번째 회의는 48/49년에 열렸을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가 다시 갈라디아서에 근거하여 예루살렘회의를 기점으로 하여 15년이나 혹은 17년을 더 뒤로 돌아가면 우리는 바울의 개종 연대를 32/34년 사이로 잡을 수 있다. 예수의 십자 처형이 주후 30년4월에 있었다고 볼 때 우리는 다메섹도상에서의 바울의 개종이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시기로부터 별로 떨어지지 않는 아주 이른 기독교 초기에 이루어졌다라고 볼 수 있다.

사울은 무슨 이유 때문에, 무슨 동기에서 스데반을 중심한 헬라계 유태인 크리스천들을 박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는가?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이 문제에 관련하여 그 자신의 동년배중 누구보다도 조상들의 유전, 말하자면 유대종교의 핵심인 율법에 대한 지나친 “열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언급하고 있다(갈 1:14). 조상들의 유전에 대한 열심과 크리스천들의 핍박 사이에는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사울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 때문에 유대종교의 근간인 성전을 모독하고 율법을 깨뜨리는 크리스천들을 필요하다면 죽여서라도 제거하여 자신의 종교를 고수하려고 했던 것이다.

바울은 이와 같은 종교적 열심 때문에 유대종교 안에서 일어난 새로운 기독교 공동체를 박멸시키려 했다. 갈라디아서 1:1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고 잔해하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사울이 이토록 크리스천들을 박해한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크리스천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을 섰는가? 왜 그는 크리스천들 때문에 조상들의 전승에 대한 강한 열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사울이 크리스천들 핍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라는 사실은 그가 누구 못지않게 초대 크리스천들과 그들의 신앙에 관하여 상당한 이해가 있었다라는 것을 전제한다. 왜냐하면 알지 않고 행동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울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초대 크리스천들의 신앙은 그 자신이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유대교 종교에 심히 위협적인 것으로 여겨졌음이 분명하다. 특별히 그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스데반을 중심한 헬라계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유대민족의 신앙과 생활의 중심점이요 보루였던 예루살렘 성전과 율법에 도전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누구보다도 강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찍이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 파멸을 예고하였을 때 당시 유대 정치 지도자들이 분노하여 이를 예수 처형의 결정적인 근거로 삼았던 것처럼(막14:58; 마26:61; 요2:19),주로 신유대 종교 보존에 힘쓰는 바리새파 출신인 사울은 예수의 전철을 따라 이제 할라계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성전과 율법을 비판하는 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미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미혹하고 유대종교를 위협하였기 때문에 십자가에 처형시킨 나사렛 예수를 유대인들이 민족적으로 기다리는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주님으로 고백하고 전파하는 것을 알았을 때 더 더욱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신명기 21:22절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고, 이미 자기 당대에 십자가처형을 받은 자가 이에 해당하는 자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당시 사울은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처형을 당한 예수를 오히려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전파하였을 때 이를 하나님께 대한 신성 모독으로 간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후에 그가 다메섹 사건을 통하여 회심하였을 때 그 자신이 갈라디아서 3:13절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해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았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러나 당시에는 십자가에 처형당한 나사렛 예수를 백성들을 거짓된 길로 인도하는 불경된 자로, 그래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울은 나사렛 예수를 추종하는 초대 크리스천 역시 나사렛 예수처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알고는 초대 크리스천 역시 나사렛 예수처럼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자로 알고 그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을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갈라디아서 1:16절에서 스스로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로 자처하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처형당했다고 생각했던 그 예수를 오히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에게 그의 아들로 계시하셨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자신이 핍박했던 그 나사렛 예수가 오히려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믿는 모든 사람들의 구주와 주님으로 그에게 계시되었던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거짓되었다고 생각하여 핍박했던 크리스천들과 그들의 메시지가 옳았으며 반면에 그 자신이 신뢰해 왔던 모든 신앙들이 근본적으로 잘 못 되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울 자신이 갈라디아서 1:16절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자신에게 계시하신 것은 나로 하여금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파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고, 롬 1:1,5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고, 은혜와 사도직을 받았다.(살전2:4; 고전1:17)라고 한 점을 볼 때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남과 동시에 새로운 사명이 주어졌을 때 지난날의 율법에 대한 그의 열심이 이제는 복음에 대한 열심으로 바뀌어졌던 것이다. 율법의 행위에 의해 의를 추구했던 바리새파 신학의 자리가 다메섹사건을 통하여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워지는 복음으로 대신 메워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날 자신이 그렇게 추구해 왔던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다 배설물처럼 취급하였던 것이다. 가치 판단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빌 3:8). 그 자신의 지난날 크리스천에 대한 핍박이 크면 클수록 그 자신의 변화 또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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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권위 :: 2008. 4. 5. 00:53


성경의
권위
(
요약문)

 

이 소책자에서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믿음과 성경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 예수의 주되심에 대한 승낙의 필수적인 결과라는 내용을 이야기 하고 있다. 성경의 신적인 영감성과 권위를 받아들이는 주된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충성심에 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그가 하늘로부터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을 확신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그의 마음에 복종시킨다. 예수님이 가르친 모든 것은 진리였다.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인 것이다.

 

구약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신적인 기원과 영원한 타당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여러 번 언급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경에 대해서 단지 말씀만 했던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의거하여 행동하셨다. 그 첫 번째 예는 개인적 의무의 영역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유혹을 물리쳤다. 두 번째 예는 공중 사역의 영역이다. 성경은 그에게 구원자의 역할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는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기 때문에 기꺼이 이를 실천하려 하셨다. 세 번째 질문 영역은 공개 논쟁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심판관으로 여기시고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종교 지도자들을 질책하셨다.

 

신약

선지자적인 배경과 교사적인 배경은 모두 apostolos라는 단어의 의미를 밝혀 주는 것이다. 사도는 특별히 선택된 사절이었으며, 또한 다른 높은 권위를 지니고 주어진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신약을 펼쳐 예수님의 사도들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사도들에게 그들의 임무를 위해서 삼중적인 소양이 부여되었다. 첫째는 그들의 친명이다. 어떤 사도도 자기 추천에 의해 임명되거나 다른 한 사람이나 여러 사람들, 혹은 교회에 의해서 임명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서 친히 선택 받아 임명되어 권위를 부여 받았다. 둘째는 그들의 역사적 경험이다. 사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낸 연후에야 말씀을 전파하도록 보내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파하는 내용은 그들이 보고 들은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온 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사도들은 성령의 특별한 영감을 받았다. 이러한 세 방법으로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신약의 기록을 준비하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친히 임명하셨고 역사적인 경험과 특별 영감을 주셨다. 각각의 방법은 그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선물이었고 각각은 사도들이 그들의 특별한 역학을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된 것이다.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사도들이 위의 사실을 이해하였고 또한 예수님께서 그들을 특별한 지위에 임명하셨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모든 성경 말씀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특별하게 계시된 축자적영감에 의해 쓰여진, 최상의 권위를 지닌 책이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어떤 교리나 영감설을 전혀 취하지 않은 채로 복음서-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의 주장은 순환하는 것-성경은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는 성경을 증거한다는 것-이 아니라 직선적인 것-역사적 기록들이 우리에게 성경에 대한 교리를 주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궁극적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권위에 대한 4가지 추론이 있는데 첫째는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에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에서 예배, 믿음, 순종, 소망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성품 위에서, 믿음은 그의 신실하심 위에서, 순종은 그의 계명 위에서, 그리고 소망은 그의 약속 위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품, 신실하심, 계명, 약속은 모두 성경에 나타나 있고 따라서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둘째로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통합성에 기초가 되는 것이다. 통합성은 스스로 모순되지 않고 평화로운 상태에 있는 통합된 사람이 지닌 정신적 특성이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믿음에 있어서 본질적이고 가장 통합적인 요소 중의 하나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는 진리이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복종해야 하는데 여기서 선택적 복종은 참 복종이 결코 아니며 그 속에 자만과 자의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지의 능력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충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기초가 된다. 진정한 지적 자유는 진리와 동떨어져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가 과학적이건 성경적이건 간에 그 진리에 복종함에 따라 발견된다. 사람이 진리에 복종할 때 거짓에서 자유 하게 되며, 인간의 허위와 사탄의 거짓말과 스스로의 주관적인 불안으로부터 자유 하게 되며, 또한 실존 경험이라는 가변적인 기초와 세상의 가변적인 풍조로부터 자유 하게 된다. 진리에 복종하는 것이 참 자유이다. 넷째로, 성경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전도의 기초가 된다.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또한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는 것을 기쁘게 증거하며 세상이라는 메마른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한다.

 

결론은 하나는 성경에 복종하는 것은 예수의 주되심을 우리가 승인하는 데에 있어서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성경에 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삶에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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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성경. :: 2008. 4. 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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