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성령의 사역 :: 2008. 5. 9. 22:09


오늘날의 성령의 사역

사례ㆍ 충만 ㆍ 열매 ㆍ 은사

(존 스토트)

서론

서구 세계 기독교 신앙의 대부분을 상실함으로써 또한 기독교 윤리도 상실하였다. 사회는 이제 의심할 바 없이 다원론적이고 허용적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기독교의 영향은 점차 감소해 가고, 사회는 점차 세속화되고 있다. 우리는 성령의 더 깊은 사역을 필요로 하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은 통일과 진리와 완성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필요로 하는 것은 서구 세계의 노인 교회들을 볼 때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볼 때도 그러하다. 주 예수께 속해 있다고 말하는 우리들 모두는 어떤 특별한 신앙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때때로 기독교인으로서의 생활과 일에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괴로움을 겪는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더 깊고, 풍요하고, 총족하게 체험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연구의 기본 원리

첫째로, 기독교인들인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소망과 의무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이 뜻을 발견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하여 성경에 나타난 이 계시는 우선 교훈적인 면에서 추구되어야지 묘사적인 면에서 추구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로, 성경의 교훈으로부터 하나님의 목적을 배우려는 동기는 실제적이며 개인적인 것이지, 학적이거나 논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제1장 성령의 약속

기독인 삶은 성령 안에서의 삶이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성령의 사역이 없이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생활과 성장은 고사하고 기독교인이 되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기독교인이 되는 첫 순간부터 성령을 체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의 삶은 새로운 출생 곧 ‘성령으로 인한’ 출생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성령께서는 스스로 오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성령의 내주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든지 공유할 수 있다.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때 성령은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 그는 또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다.

성령께서 일단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안에 거처를 삼으시고 우리의 몸을 자기의 성전으로 만드시면 그의 성화의 사역은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타락된 악한 성품들이 억제를 당하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인격이라는 좋은 열매들이 맺어지는 것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힘 때문이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우리를 연합시킨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교제는 ‘성령의 교제’이며, 기독교인의 봉사는 성령 안에서 혹은 성령으로 하는 봉사이다. 또한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가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고, 맡기신 일을 잘 하도록 여러 가지 은사를 우리에게 주시는 이도 바로 성령이시다. 그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은 천국을 확약해 주는 것인 동시에 천국을 미리 맛보게 하는 것이다.

1. 특별한 축복에 대한 약속

성령의 ‘부어 주심’ 혹은 ‘세례’는 새 시대의 주요한 특별한 축복 중의 하나였다. 새 시대를 ‘성령의 직분’이라고 한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므로 영원하시다.

예수의 특별한 사역이 이중적임은 제거와 시여, 죄를 없애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 두 가지 약속은 사실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언약’의 두 가지 주요한 축복이기도 하다. 새 언약이 이제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성취되고 실증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회개한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오순절 전에 약속하셨던 성령의 선물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오순절 날 부어 주신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성경의 증거로 비추어 볼 때 성령의 ‘세례’는 성령의 약속 또는 선물과 같은 것이며, 죄를 없애는 것이 구원의 복음에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인 것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으로 보인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믿을 때 예수는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실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

2. 보편적인 축복에 대한 약속

성령의 부어 주심 혹은 세례가 보편적인 축복이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성령께서 관계하고 계시다는 사실로 보아 분명하게 되었다. 첫 번째, 요엘의 예언과 그에 대한 베드로의 이해이다. 요엘을 통해 주어진 성령의 약속은 성령의 선물의 보편성을 강조하고 있다. 베드로가 인용했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 (행2:17) 이것은 선물을 얻기 위한 내적인 준비와 회개 그리고 믿음과 관계없는 ‘모든 육체’를 의미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것은 연령, 성별, 민족, 계급에 관계없이 회개하고 믿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구약 시대의 성령의 사역과 오늘날의 그의 사역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첫째는, 모든 종류의 성도들이 다 지금은 성령의 축복에 참여하고 있다. 둘째는,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비록 하나님을 알고 새로 태어남을 체험하는 했어도 지금은 그들이 알지 못했던 새 언약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또 선지자들과 주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성령의 특별 사역이 지금은 본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성령께서 성화 사역을 통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신다는 것을 보았다.

3. 오순절

시작 부분에 나오는 120명과 끝 부분에 나오는 3000명이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들이 회개하고 믿자마자 지체 없이 일어났다. 이 두 무리, 120명과 3000명 사이의 이러한 차이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기준은 분명히 두 번째 그룹인 3000명이다. 우리는 3000명과 같이 오순절 사건 후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과 같이 우리도 죄 사함과 성령의 ‘선물’ 곧 ‘세례’를 한꺼번에 받는다.

성령의 부어 주심 그 자체는 새 시대, 메시야의 시대, 성령 시대의 시작을 완성했다. 오순절 이후로 모든 기독교인은 예외 없이 이 새 시대에 참여자가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의 부어 주심으로 유효하게 하신 죄 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얻게 되었다. 구약의 성령의 오심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를 성취한 것일 뿐 아니라 예수께서 다락방에서 사도들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신 특별한 약속을 성취한 것이기도 하다. 그 약속의 성취로 사도들은 성령으로 감동된 권위 있는 교사로서 특별한 사도의 임무를 준비하게 되었다. 오순절을 최초의 ‘부흥’으로 간주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았다.’ (갈3:14). 구원을 주는 믿음,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붙잡는 믿음임을 알 수 있다.

4. 사마리아 신자들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의 그 오래된 분열이 교회 안에서도 살아남아서 유대 기독교인들과 사마리아 기독교인 사이에 무서운 분쟁이나 생기지 않을까. 바로 이러한 상황이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지도자 격인 두 명의 사도가 그들에게 내려가서 조사하고 안수함으로써 그들의 회심이 순순함을 인정하고 확증할 때까지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성도들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는 것을 보류하셨다는 가정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5. 에베소의 제자들

성경은 언제나 고백에 따라 사람들에게 명칭을 준다. 곧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신자라고 부르고,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그들에게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이것은 적어도 그가 그들이 성도임을 고백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어떤 이유로 인해서 바울이 그들의 신앙의 실제를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이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성령에 대하여 듣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기독교적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단 말인가. 지금 어떤 교사들은 이 이야기를 들어 표준적인 기독교인의 경험 속에서 성령의 선물 곧 세례는 회심에 이어서 일어나는 부차적인 그리고 결과적인 경험이라는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정말로 이 이야기를 이렇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6. ‘세례’라는 용어

‘세례’에는 ‘연합’이라는 개념이 있다. 물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공개 예식이다. 그것은 죄를 씻어 버리고 성령을 받는다는 가시적인 의미를 가진다.

7. 고린도전서 12장 13절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으로 마시게 하셨느니라. 따라서 이 구절에 나오는 성령의 세례는 큰 결합 요소이지 결코 분리 요소가 아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세례는 몇몇 기독교인들이 누리는 부차적이고 결과적인 체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누리는 최초적인 체험이라는 결론을 거부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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